확대 l 축소

[사설] 죽음이 없는 일터, 전북이 앞장서 실천하자

문명국가에서 산업재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안전설비와 관리 인력을 줄이고 위험을 노동자의 목숨과 맞바꾸는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범죄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산재 근절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전국 산재 사망자는 2천100명. 이 중 827명이 추락, 끼임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만 취했어도 막을 수 있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특히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위반으로 사망한 노동자가 589명에 달한다. 전북도 예외가 아니다.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북 지역 산재 사망자는 70여 명에 달했다. 건설 현장의 추락사, 제조업 공장의 기계 끼임, 농·축산업의 기계 전도와 밀폐공간 질식사고가 반복됐다.

전북은 산업 구조상 산재 취약성이 높다. 도내 전체 사업장의 90% 이상이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며 하청·재하청 구조가 만연하다. 특히 군산과 익산의 제조업, 전주와 완주의 건설·물류업, 김제·부안의 농·축산업 현장은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환경에서 안전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보호구 지급조차 부실한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사회적 타살”이라며, 필요하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의 오명을 벗겠다고 밝혔다. 산재 발생 기업에 대한 대출 규제와 건설 면허 취소 같은 강력한 제재도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질타와 사후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의 핵심은 ‘사전 예방’이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시급하다. 지금은 중대재해가 발생해야만 근로감독관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지만, 위험 징후가 명확할 때도 선제적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산재 현황과 재발방지 대책을 매년 공개하는 ‘안전보건 공시제’가 도입돼야 한다. 전북처럼 영세·하청 사업장이 많은 지역에서는 안전관리 전담 인력을 공동으로 두는 ‘지역안전지원센터’ 설치도 필요하다.

중대재해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무리한 야간노동 제한, 다단계 하청 구조 철폐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특히 전북의 농·축산업 분야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언어 장벽과 법 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정부와 지자체는 다국어 안전매뉴얼과 교육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사법부의 인식 변화도 절실하다. 중대재해법 위반 사업주에게 실효성 있는 형벌을 부과하고 기업이 스스로 안전설비 투자와 현장 관리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와 노동청, 산업안전공단이 협력해 전북 전역의 모든 고위험 사업장을 전수 점검하고 개선 명령 이행 여부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세계 10위 경제 강국의 위상은 GDP 수치가 아니라, 노동자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사회에서 비로소 증명된다. 산재는 예방이 가능한 범죄다. 전북이 산재 제로를 달성하는 모범 지역이 될 때, 우리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길을 전북이 선도하자.
  • 글쓴날 : [2025-08-17 13:10:08]

    Copyrights ⓒ 전북타임즈 & jeonbuktimes.bstorm.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